어제 방을 같이 쓴 형님이 다행히도 코를 안 골아서 푹 잤다. 워낙 피곤했어서 내가 골았을 수도 있다.
아침으로는 불고기 버거와 화이어윙을 먹었다. 제주도에서 먹은 것 중에 젤 맛있었다.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바로 길을 나섰다. 오늘은 3코스와 2코스를 걷기로 했다.
4만 걸음 걸었으니 약 30킬로 정도 걸은 것 같다.
발에 생긴 물집 따위는 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다만 오늘은 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얼굴과 다리가 엄청나게 타기 시작했다. 트래킹 할 때 반바지 입는 정신 나간 놈의 최후였다. 그래도 교훈을 하나 얻었으니 다음부터 긴바지 입고 가면 된다.
제주도는 신기하게도 탁 트인 평야가 많았다. 그래서 말이나 가축들이 뛰어놀기 좋은가보다. 소들이 엄청난 크기의 땅을 누리고 있었다.
해안가를 따라 걷다 보니 오징어를 말리는 장면을 많이 본다. 햇빛 좋고 바람도 엄청나게 부니까 금방 마를 것 같았다.
결국 반건조 오징어를 먹어보기로 했다. 반건조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말리는 모습을 보니 먹고 싶었다.
쥐포 2000원 오징어 9000원 사이다 1500원 이렇게 13,500원이었다. 쥐포는 맛있었지만 오징어는 맛없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맛이랑 똑같았다.
경치가 좋아서 라면도 먹기로 했다. 가격은 만원이었다. 맛은 20점 정도였는데 경치는 100점이었다. 왼쪽 수평선과 오른쪽 수평선이 탁 트이게 잘 보였고, 수평선을 따라 선을 그려보니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도 느껴졌다.
해안도로만 걷다가 가끔 오름이나 동네를 갈 때에는 족제비 같은 귀여운 동물을 만나기도 한다.
하루종일 걷다 보면 쉬어야 할 타이밍에 장소가 애매해서 계속 걷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면 결국 탈 나게 되는 것 같다. 햇빛에 덴 종아리, 어제 5만 걸음 걸은 몸뚱이는 체면 없이 그늘만 보이면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게 만들었다.
그래도 경치와 자연에 힐링하면서 다시 걷게 된다. 여긴 나중에 누구랑 오면 좋겠다고 상상하며 걷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오름에 올랐을 때 보이는 성산일출봉과 한라산이 정말 이쁘다.
올레길은 가끔 이상한 길로 안내하지만 이상한 길을 걷다 보면 이상하게도 좋은 경치가 있다.
오늘 머물 곳은 해녀 신춘자 할망네 민박이었다. 올레 가이드북을 읽다 보니 알게 되었다. 혼자 사시는 할머니는 적적함을 덜 수 있고, 여행자는 숙소에서 고향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집과 마당은 상당히 넓었고, 각종 해조류와 해산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할망 민박에서는 저녁과 조식을 준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그런 건 없었다. 나는 치킨이 먹고 싶었기에 치킨을 시켜서 할머니랑 같이 먹었다.
먹으면서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할머니는 70세가 넘으셨는데도 7,8m를 잠수하며 물질을 한다고 했다. 자녀가 5녀 1남인 것도 우리 할머니랑 같았다. 집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우리 할머니집과 닮았다. 누워서 고개만 까딱 돌리고 6시 내 고향을 보는 모습도, 방에 누워있으면 문 넘어 들려오는 8시 연속극 소리도 너무 정겨웠다.
5년 전만 해도 우리 할머니 엄청 정정했는데..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강한 힘인 것 같다. 우리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 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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